안녕하세요, 솬씨티입니다.
오늘은 저번 봉준호 감독님의 대학생활을 다룬 1편에 이어
연세대학교 졸업 후 세계적인 거장이 되기까지의 과정을
이야기해드리고자 합니다.
출발하겠습니다.
연세대 사회학과 88학번 봉준호 선배는
이장호, 배창호 감독을 보면서 굳이 영화학과를 나오지 않아도
영화감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.
봉준호 선배 대학시절을 다룬 1편에서 말씀드렸듯이
군 복무를 마친 뒤 '노란 문'이란 영화 동아리를 만들고
16mm 필름으로 첫 단편영화 《백색인(1993)》을 연출했습니다.
대단하십니다.
대학 졸업 후에는 한국영화아카데미에 11기로 입학했고,
16mm 단편영화 《프레임 속의 기억(1994)》 및 《지리멸렬(1994)》을 연출했습니다.
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1999년까지 충무로에서
조연출과 각본 등의 활동을 하며 경력을 쌓았다네요.
2000년 입봉작 <플란다스의 개(2000)>에서
독특한 스타일과 소재로 가감 없이 펼쳐
당시 영화 전문가들에게 기대주로 주목받았습니다.
마침내 실화를 모티브로 한 <살인의 추억(2003)>에서는
대중성을 더하며 그의 이름을 확고히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.
그리고 2006년에 내놓은 <괴물> 작품이
흥행에 성공하여 명장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.
2009년 <마더>는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
각종 시상식과 비평가 협회상을 휩쓸었습니다.
그 후 2013년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 제작비(437억)를 투입해 만들어진
<설국열차>로 한국 영화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 공헌을 했습니다.
여섯 번째 영화인 <옥자(2016)>는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고
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고 알려지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답니다.
하지만 옥자는 2017년에 넷플릭스 스트리밍 서비스 영화 중
최초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는데요.
이처럼 봉준호 감독은 어떠한 틀에 갇히지 않고
새로운 형식으로의 도전 중인 것 같습니다.
역시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고
하신 마틴 스콜세지 형님의 띵언이
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.
이후 2019년 드디어 기생충이
한국영화 100년 역사상 최초로
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,
마침내 이듬해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
각본상, 국제영화상, 그리고 최고 영예인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하여
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등극하였습니다.
다시 한번 아카데미 수상을 축하드리며,
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되는
봉준호 감독님 파이팅입니다.
이번에도 마지막은
아카라카를 온누리에 외치며
글을 마치겠습니다.
아카라카!
아라칭 아라초 아라 치칭 쵸쵸쵸
랄랄라 시스붐바 연세 선수 라플라
헤이 연세~야!
(본 게시물은 연세 소식 622호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.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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